self-recommend展
특정 작업의 주제, 표현 그리고 기법 등 작업의 생산과 관련된 주제는 이미 학내의 다른 여러 전시에서도 다뤄졌고 앞으로도 계속 다뤄질 예정이다. 작업이 어떤 주제로 만들어졌는지, 어떤 방법으로 만들어졌는지, 다른 작업과는 어떤 차이를 가지고 제작되었는지 등 작업의 탄생과 관련된 질문을 바탕으로 한다면 비슷한 포맷의 비슷한 전시가 양산될 수도 있지만, 각 질문은 예술 행위의 한 핵심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유효하고 가치가 있다. 작업은 일단 실현되었을 때 작업답다. 따라서 우리는 작가의 아이디어가 작업이라는 형태로 실현되는 과정에 일단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작업은 실현된 이상 누군가에게 수용되었을 때 가장 작업답다. 습작이나 스케치가 아닌 이상 수용자를 염두에 두지 않고 생산된 작업은 일반적이지 않다. 심지어 대가들의 습작은 그들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대중에게 공개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전의 학내 전시에서는 작업의 수용까지를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못했다. 이는 기존과 다른 전시를 해야한다는 부담 때문일 수도 있고 번거로움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이번 전시는 작업의 생산부터 수용까지의 과정을 주제로 꾸려보고자 한다. 먼저 언급했듯이 작업의 수용은 작업의 생산만큼이나 예술 행위에 있어서 중요한 핵심이기 때문이다. 본 전시는 작가의 아이디어가 작업으로 실현되어 관람객에게 수용되는 과정을 개념화하여 전시 속으로 이식하고, 해당 과정을 전시 기간 동안 추적하며 로깅(logging)한다.
# | 단계 | 과업 |
1 | 아이디어가 구체화되어 작업으로 실현됨. | 자기추천—작업은 작가 자신의 기준을 충족시켜 작가 자신으로부터 추천받아야 함. |
2 | 작업이 작가 자신의 품을 떠나 관람객에게 수용됨. | 타인추천—작업은 작가의 기준을 넘어 작가 이외의 타인, 즉 관람객으로부터 추천받아야 함. |
작업의 생산부터 수용까지의 과정은 ‘자기추천’ 과정과 ‘타인추천’ 과정으로 단계화될 수 있다. 먼저 작가에 의해 탄생한 작업은 우선 작가의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 그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그 작업은 작가에 의해 폐기되거나, 습작 노트 속으로 들어가 공개되지 못한다. 만약 그 기준을 충족시킨다면, 작업은 작가로부터 사회에 직접 추천된다. 예를 들어 작가는 자신의 기준을 충족시킨 작업을 모아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공모나 페어에 제출하거나, 개인전을 펴는 등의 방법으로 자신의 작업을 사회에 자기추천한다.
자기추천된 작업은 우선 미술계에서 선별된 전문 인력에 의해 검토된다. 이들은 일반적인 관람객을 상정하고 해당 작업이 그들의 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는지 검증한다. 이 과정을 통과하면 해당 작업은 일반 관람객들에게 공개되며, 비평될 기회를 얻게 된다. 즉 각 작업은 타인에 의한 추천을 받아야만 사회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전시에서는 위의 과정을 전시 속에 이식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우리 학교의 작가들이 본 전시에 참여 지원을 하는 과정은 자기추천에 해당한다. 기획단은 최소한의 기준을 적용하여 이들의 작업을 전시에 올리게 된다. 전시장에는 관람객들이 이 작업을 본 후 감상평을 남길 수 있는 일종의 방명록이 존재하며, 관람객들은 각 작업을 본 후 마음에 드는 작업에 대해 추천평을 남기게 된다. 관람객의 추천평은 작가뿐 아니라 다른 관람객에게도 공유되며 또다른 추천평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렇게 연속된 타인추천은 작업이 작가의 품을 떠나서도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작가의 자기추천으로 촉발되므로 본 전시 역시 ‘self-recommend展’이다.
한편 본 전시의 참여 작가는 작가인 동시에 미술대학의 학생이기도 하다. 즉 이들은 작가로서의 자기실현뿐 아니라 동시에 평가 시스템으로부터의 고평가를 달성해야만 한다. 이러한 상황은 자기추천을 방해하고 교란시키며, 작가의 자신의 작업에 대한 평가를 수동화할 것이다. 그러나 타인추천은 자기추천을 전제하므로 이러한 실정은 궁극적으로 각 작가의 예술 활동에 대한 병폐로 작용하게 된다. 본 전시는 이들에게 자기추천의 과정을 명시하고, 이 과정에 의식적으로 임하게 한다. 이 과정에서 참여 작가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해왔던 작업에 대해 성찰하며 자신만의 작업론을 성립하게 된다.
본 전시는 자기추천 이후의 타인추천 과정 역시 작가와 관람객에게 명시함으로써,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 대한 타인의 추천평을 통해 작업이 수용되는 과정을 모니터링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자신의 창작 행위를 검토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 관람객은 자신의 기준에 맞는 작업을 직접 추천하여 해당 작업이 사회적으로 수용되는 데에 일조하면서 작가와 직접적으로 소통하게 된다.
예술의 생산과 수용: 추천의 연결고리
1) 자기추천
나의 예술과 나의 인생은 완전히 하나다. … 내게는 나의 연단(演壇)이 있고, 나는 주목을 받고 있으며, 사람들은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지금은 제프쿤스를 위한 시간이다. — 제프쿤스, 1990년대 한 인터뷰에서
모든 예술가는 일정 부분 나르시스트의 면모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작업을 자신의 기준에 맞추어 철저히 검증한다. 검증되지 못한 작업은 보완되지 않는 이상 숨겨지지만, 검증된 작업은 작가에 의해 사랑받게 되며 사회에 직접 추천된다.
2) 타인추천
“… 사안이 고개지에게 말하기를 ‘그대의 그림은 인간이 생긴 이래 없었다.’”고 했다. 또한 “그대의 그림(과 같은 것)은 창힐 이래로 없었다.”고 말했다. — 장언원, 역대명화기
작가에 의해 자기추천된 작업은 사회 속에서 검토된다. 관람객들은 작업이 자신의 기준을 충족시키면 해당 작업을 다른 관람객에게 추천한다. 연속된 타인추천은 작업이 사회 속에 편입될 수 있게 하며, 작가를 벗어나도 생명력을 지닐 수 있게 한다. 이렇게 추천된 작업들은 사회 다수에 의해 감상될 수 있다. 작업은 수용될 때 가장 작업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