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추천 - 이지현 작가

작가 소개

이지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디자인학부 시각디자인전공


자기추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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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막

이지현, 사막, 2019, 캔버스에 유채, 100.0 × 72.7 (cm)

다양한 길이 있겠지만 나는 아무래도 사막을 걸어가는 중인 듯하다. 기본적으로 나는 굉장히 건조한 사람이다. 어릴 때는 그렇게 눈물도 많고 감정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신기할 정도로 무미건조한 사람이 되었다. 기쁨, 신남 따위는 느껴도 슬픔은 극히 느끼는 빈도가 낮다. 두려움도 마찬가지인 듯싶다. 무엇이든 삼켜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기도 하다. 사막도 과거 한 때는 생명력 가득한 바다였다고 하는데, 그런 면에서 나는 사막을 조금 닮은 것 같다. 처음 내가 사막에 발을 들인 것은 아마도 도피를 위해서였다. 나를 모래 속에 숨기기 위해 찾았던 사막에서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찾아냈을 때, 그 곳은 나에게 둘도 없는 장소가 되었다. 땅을 파다 보면 가끔 덜 마모된 유리 조각에 찔려 상처를 입기도 하지만 모래에 가려져 있던 주옥같은 물건들을 건져낼 때가 있다. 대게 그들은 우울했던 감정이다. 우울함은 우울함으로 밖에 표현이 안되는 걸까. 감정은 감정으로만 표현되는 걸까. 사실 작업의 소재를 나의 우울함에서 찾고 싶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우울하다 싶으면 제외시키고 시작했을 정도였다. 최근에 와서야 생각이 바뀌었다. 더 단단해 진단 건 묻어두고 모르는 척하는 게 아니라, 차분하게 바라볼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자 우울함 속에서 건져낸 소재들이 다시 나를 상처 입히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든 순간이 왔다. 이미 응고되어 되려 좋다고 느껴지는 순간. 그렇게 찾은 감정을 하나 둘 모아 녹여보기로 했다. 신기한 일이다. 겉으로 잘 나타나지 않는 감정이 그림에서 드러난다는 것은. 효율을 따지고 이성적이고. 기계라는 별명도 곧잘 듣는 내가 그려낸 그려낸 그림에 감정이 실린다는 것은. 아직까지 내가 찾아내지 못한 게 많다는 의미가 아닐까. 그리는 동안 나는 우울하기도 했고 편안하기도 했다. 그 이상의 것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편안함, 두려움, 혹은 그 외의 것. 나의 그림을 보는 사람이 무엇을 느낄 지는 모르겠으나 기왕이면 다양한 감정을 느꼈으면 한다. 당신은 보는 동안 어떠셨나요.

: 바다

이지현, 바다, 2019, 캔버스에 유채, 53.0 × 33.3 (cm)

아쿠아리움에서 넋을 놓고 아름답다 생각하며 본 물고기들이 사실 실향민이라는 생각이 든 이후 미묘한 기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느릿느릿 헤엄치는 물고기를 보면서 우리는 편안함을 느낄 지 모르나 그들이 어떤 기분일지 알 수는 없다. 넓은 바다를 헤엄치는 상상을 할까 유리벽에 부딪혀 절망을 느낄까. 어쩌면 아무 생각도 없을 지 모르지. 왔던 곳으로 돌아갈 수 없는 너희는 어떤 기분일까.